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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이야기
북기 | 2020.03.28 | 조회 260 | 추천 0 댓글 0

모든 길은 부재(不在), 없음을 나타낸다. 길은 존재가 새어 나가는 구멍이다. 길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천년만년 걱정 없이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눈물 흘리며 길 위를 떠다니는 불안한 존재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심마니들은 길을 사시미라고 불렀던 것일까.

길은 왜 길인가. 경부 고속도로가 서울과 부산을 이어 주듯 길은 언제나 어떤 곳과 또 다른 어떤 곳을 이어 준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길은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가. 과거와 미래, 다시 말해 역사인가. 사람은 없음(無)에서 태어나 죽음으로써 다시 없음으로 돌아간다.

결국 인생길은 없음에서 없음으로 가는 통로인데, 그 길은 지름길인가, 아니면 에움길인가. 에움길이라면 없음에서 없음으로 가는 너무나 뻔한 길을 에둘러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움길은 우회로(迂廻路)인데, 엔길, 돌길, 돌림길, 두름길과 뜻이 비슷한 말이다.

질러가는 길보다 돌아가는 길에 붙은 이름이 많은 것처럼, 그리고 인생길이 그런 것처럼 사전에 실려 있는 길들의 이름을 훑어보면 큰길이나 한길같이 넓고 걷기 쉬운 길보다는 좁고 지나기 어려운 길들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뒤안길이라는 말이 있다. 한길이 아닌 뒷골목의 길을 뜻하는데, 햇볕을 못 보는 초라하고 음침한 생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행가에 많이 나오는 ‘인생의 뒤안길’인 것이다. 비슷한 말로는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고샅, 이면도로(裏面道路)를 가리키는 속길이 있는데, 골목으로 접어드는 어귀의 길가를 병문이라고 한다.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길은 논틀길, 거칠고 잡풀이 무성한 땅에 난 길은 푸서릿길, 오솔길은 너비가 좁은 호젓한 길을 말한다. ‘오솔하다’는 ‘둘레가 괴괴하여 무서우리만큼 호젓하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무서우리만큼 호젓하고 깊숙하다’는 뜻의 ‘후미지다’에서 나온 후밋길과 통하는 말이다. 후미는 물가나 산길이 휘어서 굽어진 곳을 말한다.

사람의 자취가 별로 없이 나무꾼이나 겨우 다니는 희미한 길은 자욱길, 강가나 바닷가의 벼랑 위에 난 몹시 험한 길을 벼룻길이라고 한다. 또 바위에 등을 대고 겨우 돌아갈 수 있는 험한 산길은 지고 돈다고 해서 지돌이, 반대로 바위를 안고서야 가까스로 지나가게 된 곳은 안고 돈다고 해서 안돌이라고 한다.

이렇듯 쓸쓸하고 힘겨운 험로들을 지나며 살아가다 보면 때로 아름다워 눈물겨운 길도 밟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숫눈길 같은. 숫눈길은 눈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 그대만을 위해 준비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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