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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겹도록 아름다운 날들
북기 | 2020.03.30 | 조회 326 | 추천 1 댓글 2

나는 잘 운다. 옆 사람이 울면 따라서도 운다. 며칠 전에도 우리 반 지인이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당신의 손녀를 학교에 좀 다니게 도와 달라고 눈물을 글썽이시는데 나도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남동생이 군에 입대하던 날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어띠나 이를 악 물고 눈물을 참았던지 며칠동안 어금니가 아파서 음식을 잘 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나는 또 소심한 완벽주의자이다. 예를 들면 남보다 뭐든 미리 하고 나중에 또 해야 직성이 풀리고, 말한 것은 그래도 지켜야 하며, 사소한 일도 걱정이 많다. 그렇게 마음 약하고 계산기로 정답 내듯이 깔씀해야 마음이 편한 내가 어떻게 그런 힘든 연애를 9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남들은 내가 고집이 센줄 알지만 얼마나 우유부단한지 너무 잘 아는 나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을까?
한 동네에서, 처음부터 동성동본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교제를 시작한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다. 그이와 교제가 시작되자마자 엄마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다며 협박 조로 나오셨다. 막 교제를 시작하는 마당에 결혼 얘기부터 하시며, 엄마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서히 엄마의 협박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전화 안바꿔주기는 기본이고(당시에는 호출기도 없었다), 외출금지에 심지어는 머리카락을 자르기까지 하셨다.

어느새 나는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왕따가 되었고, 점점 말수도 적어졌다. 그렇게 3년을 힘들게 교제하다 그이가 군대에 갔다. 엄마는 안심하는 눈치이셨으나 떨어져 지낸 그 3년의 시간도 내 마음을 바꿀만큼 길지는 않았다. 나는 거의 매일 편지를 썼고 남편의 늦깍이 군대 생활도 그러다 끝나고 제대했다.

그후에도 지루하고 축축한 장마처럼 그렇게 3년의 시간이 또 흘렀다. 무척 힘겨운 시간이었다. 지금은 참 힘들었다는 표현이라도 하지만 그 때는 고달픈 시간이었다. 여전히 현실은 우리편이 아니었지만 늘 그렇게 캄캄하지는 않았다.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갑작스레 닥친 우리집의 경제적 어려움이 계기가 됐다. 기적처럼 석달만에 양가의 허락을 얻어 허겁지겁 준비한 뒤 우리는 9년만에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어제도 나는 ´겨울연가´를 보며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웬지 슬프다. 나도 그렇게 9년 동안 수백 번 그 사람과 헤어지는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헤어져야 정상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상식을 넘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은혜란 용어로 설명되는 것일까? 아마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였고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우리의 두 딸은 더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 된 것이다.

늘 ˝새날˝을 지켜내는 삶

물론 9년 동안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긴 만큼 추억도 많아 겨울이면 점퍼 주머니에 두툼한 털장갑을 가지고 나와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까지 내 손을 녹여주던 일이며, 유넌히 추위를
타는 나를 위해 또한켤레의 양말을 준비해 양말 위에 양말을 신겨주던 일, 별 것 아닌 것도 기념해 노래를 만들어 우리가 함께 할 ´새 날´을 강조하며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던 모습, 군대 가서도 교회에서 틈틈히 기타치고 노래한 것을 녹음해 나를 놀라게 한 일, 여행가는 곳곳마다 노트에 글을 쓰고 또 직접 녹음도 하여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림처럼 떠오르게 만들던 모습, 매일 학교로 날아오는 엽서에 과 친구들이 오히려 우편함을 뒤지게 만들었던 일, 그리고 여러권의 노타와 수백통의 편지들...., 세월이 지나고 바쁜 현실에 떠밀려 여유 없는 생활 속에서도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살며시 웃음이 난다.
이제 남편이 노래하던 바로 그 ´새 날´을 맞은지 7년. 아이 둘에 직장생활까지 하루하루가 바쁘니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사랑도 힘들지만 ㅂ부로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는 아직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남펴닝 노래하던 그 ´새 날´이 결코 ´허구한날´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또 사랑과 추억을 만들려 한다. 가끔 생각해본다. 우리 딸들이 커서 엄마처럼 힘든 사랑을 한다면? 아마 반대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힘겨운 사랑은 정말 안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단 하나, 아빠처럼 멋있는 사람을 꼭 만들 수만 있다면,
그걸 증명할 수 있다면, 난 아마 못 이기는 척 딸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다. 그 아츰까지도 언젠가 아름다운 추억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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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123 | 추천 0 | 03.30  
좋은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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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린이 | 추천 0 | 03.30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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