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역 -고경숙-
지금 창밖은
겨울이 지나고 있습니다 눈 덮인 삼나무 숲을 지나는 기차 칸에서 내다보는 눈발은 전생을 지나며 내가 맞았을 시간의 입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빙된 계절 속에 나는 내렸고 기차는 나를 태우고 떠났습니다 계속 눈이 내렸습니다
들판을 지나며 기차는 유순해집니다 바람도 길도 느리게 열리고 햇볕도 나른합니다 정거장마다 연착된 기차의 안내 멘트가 빛의 속도와 가지런합니다 수년 전, 내가 절레절레 흔들었던 사과장수 아직도 손 내밀어 권하고 있습니다 아이 하나 얼굴 빨간 인디언 인형을 손에 쥐고 놉니다 아이가 태엽을 감는 만큼 인형은 말을 달리다 멈춥니다 달리다 멈추고 달리다 멈추는 인디언들은 정신이 육체를 따라올 시간을 기다려주는 거라던데
누구에게 물어볼까요 기차 밖 눈세상 해빙기는 언제인지 그렇다면 삼나무숲을 떠돌고 있을 지체된 나를 기다려주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건지 앞 못 보는 지팡이처럼 똑똑 두드려 봐야겠습니다 여기쯤 기차를 내려야할 것 같습니다 그해 겨울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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