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허공일 뿐인데 왜 지나온 시간 쪽으로 내 발길은 휘몰아쳐 가는가 뒤돌아보면, 살아낸 시간들 너무도 잠잠해 다만 바람의 취기에 마음을 떠밀렸을 뿐 눈밭에 흩뿌려진 별들의 깃털, 탱자나무 숲 굴뚝새의 눈동자 달빛 먹은 할아버지 문풍지 같은 뒷모습 산비둘기와 바꾸고 싶던 영혼, 얼마를 더 떠밀려 가야 생의 상처 꽃가루로 흩날리며 바람에 가슴 다치지 않는 나비나 될까. 제 몸을 남김없이 허물어 끝내 머물 세상마저 흔적 없는 바람의 충만한 침묵이여 메마른 나뭇가지 하나의 흔들림에도 고통의 무게는 작용하는 것, 걸음이 걸음을 지우는 바람 속에서 나 마음 한 자락 날려 보내기엔 삶의 향기가 너무 무겁지 않은가. 글/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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