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첫날엔 밑밥을 깔아야 되므로 굉장히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주변의 연애 박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세 방법을 선택했는데, 주선자 손에서 한 번 걸러진 소개팅하기, 핫 가이들이 몰리는 물 좋은 클럽에 가기, 상대의 스펙을 미리 알 수 있는 스터디 모임 모집하기였다. 나름 연애 박사라 자부하는 이들이 추천한 방식이니 믿을 만했다. 이와 더불어 좀 더 도전적인 방식도 하나 택했다. 생판 몰라도 접근할 수 있는 헌팅. 이렇게 4가지 방법을 통해 수많은 연애 접신의 기회를 만들고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어떤 방식으로 낚아볼까?
인연 만들기 위한 접근법 4가지
소개팅
왕건이(?)를 소개해줄 만한 사람들에게 문자 메시지와 메신저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너무 다급해 보이면 자칫 퀄리티가 떨어지는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으므로 그냥 던지는 식의 내용이었다. “저 소개시켜줄 훈훈한 남정네 있으신가요? 그럼 연락주세요” 오호라! 2명에게서 소개팅을 주선해준다고 연락이 왔다. 여기선 뭐든지 무는 게 상책. OK 하고 바로 날짜를 잡았다.
클럽
화려하게 차려입고 친구와 입성한 클럽. 레이더망에 포착된 핫 가이 한 명이 다가와 연락처를 물었다. 클럽에서의 급만남은 찰나와 같다지만 이 남자, 첫 만남에 끈질기게 호감을 보였다. 10일 안에 넘어올 수도? 연락처를 주자 자기에게 넘어왔다는 승리감에 얼굴 가득 미소가 퍼지지만 쯧쯧, 넘어온 건 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스터디 모임
진정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잡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의 스펙을 미리 알 수 있는 스터디를 모집하는 게 묘책. 나는 온라인 영어 카페에서 직장인 영어 회화 스터디 모집 공고를 냈다. 중상급 이상의 실력을 갖춘 최고의 스터디원을 뽑기 위해 간단하게 스펙과 직업을 써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메일이 오면 마음에 드는 남자 3명과 여자 1명(남자만 뽑으면 이상하니까)을 뽑을 예정이다. 공부도 하면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작업을 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소개팅처럼 주선자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거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외모는 알 수 없으니 주의하길. (이런 방식까지 동원한다고 부디 욕하지 마시길, 실험입니다. 휴~.)
헌팅
친구와 점심을 먹은 뒤 근처 별다방에 갔다. 진한 라테를 마시며 수다에 한창 몰입하던 중 옆 테이블에 앉은 멀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좋았어! 가서 명함을 내밀며 직장인들을 인터뷰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의 번호를 받았다. 다짜고짜 관심 있으니 번호 알려달라고 하는 건 용기 있어 보일진 몰라도 자칫 힘의 균형이 남자에게 쏠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약간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들이댄 거지만 말이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것?
DAY 2
아침에 일어나 보니 클럽남에게 오늘 만나자는 문자가 와 있었다. 물론 일정이 있어서 거절했지만 만약 시간이 돼도 거절하는 게 좋다. 바로 ‘OK’를 날리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으니. 어제 헌팅한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와 인터뷰를 가장한 만남을 가졌다.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여친이 있는지 확인하니 없단다. 본격적으로 낚시질에 돌입했다. 저녁엔 회계사와 소개팅을 했다. 이 둘을 만나면서 영국판 코스모폴리탄에 나온 ‘90분 안에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법’ 칼럼에서 알려준 방법을 적용했다. 일단 이성을 보고 단 2초 만에 좋아할지 싫어할지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외모에 최대한 신경 썼다. 또한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라(비슷한 행동을 하면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조언에 따라 그와 같은 메뉴를 시키고 같은 타이밍에 물 마시기, 웃기, 박수 치기 등 마치 그의 이미테이션처럼 비슷하게 행동했다. 역시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건지, 집에 가는 길에 소개팅남에게 애프터 문자가 왔다. 어떤 물고기를 낚아볼까?
DAY 3
헌팅남에게서 언제 식사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문자가 왔다. 호감 상태이니 여기서 더 발전시키면 잘될 수도. 오후엔 첫 스터디 모임을 가졌는데, 한 명에게 작업을 걸기로 했다. 그는 얼마 전 외국계 회사에 입사한 사회 초년병. 그에겐 몇 달 전 코스모에 나온 ‘백발백중 애프터 수취녀의 비밀 대공개’ 기사를 적용해 “파란색 카디건이 잘 어울리시네요. 감각 있으신데요”,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시네요. 말주변이 좋으세요” 하며 칭찬을 했다.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깨고 내게 호의적으로 다가올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었다. 단, 너무 남발해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헤어지는 길에 평일 저녁에 만나 식사를 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좋죠~ 저도 식사하고 싶어요”라는 답변이 왔다.
저녁엔 소개팅을 또 했다. 이번엔 금융권 사람을 만났다. 일단 스타일이 좋아 마음에 들었다. 그쪽도 내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대화할 때마다 내게 “저랑 다음에 그 레스토랑에 꼭 가요. 맛과 운치가 있는 곳이거든요”, “다음엔 저랑 가요” 하며 은근히 다음 만남을 얘기 했다. 근데 이 남자 선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의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니 휴대폰에 그의 애프터 문자가 들어왔다.
DAY 4
클럽남의 끈질긴 문자질과 애간장 태우는 거절을 거듭한 끝에 그에게 점심을 허락했다. 외제 차를 몰고 온 그는 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얼마 전에 입국했단다. 두 달 후 홍콩에 있는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각 잡기와 불타오르는 승부욕의 달인이었다. 그에게 맞는 연애 필살기는 ‘밀기’였다. 그래서 관심 없는 척했고 그럴수록 그는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안달했다. 걸렸군! 식사를 마친 뒤 취재하러 가야 된다고 하니 그가 데려다 준다고 했다. 그는 언제 시간이 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바빠서 잘 모른다고 튕겼다.
저녁엔 소개팅했던 회계사와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가 농구광이라는 사실을 알고 ‘옳거니!’ 하며 코스모에서 알려준 연애 엑기스 공식을 떠올렸다. 남자의 DNA는 스포츠와 만화라고 했던가. <슬램덩크> 얘기를 꺼내자 그는 급흥분 모드로 돌변. 기사에 나온 따옴표 내용 그대로 “<슬램덩크>에서 북산과 상양 등 예선전부터 본선전까지 다 합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뭐예요? 역시 본선의 산왕전이죠?”라고 말하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약발이 먹혔는지 집에 데려다 준 그가 조심스레 차 안에서 내게 고백을 했다.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이렇게 빨리 성과를 거둘 줄이야.
DAY 5
아침에 일어나니 헌팅남, 클럽남, 소개팅남에게서 정신없이 문자가 와 있었다. 휴, 누구랑 어떤 대화를 했는지도 가물가물한 상태. 역시 여기저기 간을 보고 있을 때는 무엇보다 조심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그물에 걸린 클럽남, 헌팅남, 회계사에겐 굳이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 애간장을 태우기로 했다.
저녁엔 스터디에서 만난 외국계 회사원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난 이미 그의 스펙을 어느 정도 꿰고 있었지만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휴가 때 뭐 하셨어요?”,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가 있나요?”(그의 경제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의도) 등 첫 만남에서 여자들이 알고 싶어 할 만한 남자의 스펙에 대해 우회적으로 물어봤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끈질기게 문자를 보내던 클럽남이 전화를 걸어 잠깐이라도 얼굴 좀 보자고 한다. ‘이 녀석 정말 꽂혔군!’ 기분은 좋았으나 ‘밀기’ 상태 그대로 유지, 귀찮다고 딱 잘라 말했다.
DAY 6
오늘은 애태웠던 이들에게 채찍이 아니라 당근을 주기로 했다. 귀여운 이모티콘을 넣어 문자를 보냈다. 한 명은 빛의 속도로, 두 명은 10여 분 안에 답문이 왔다. 클럽남과 회계사가 오늘 저녁 시간이 어떠냐고 했다. 계속 애간장을 태웠으니 이번엔 클럽남에게 OK 했다. 전엔 까칠하게 굴었지만 오늘은 약간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러면서 클럽에서 만난 관계는 왠지 가벼울 것 같다고 말하니까 그는 자신은 그런 타입이 아니라고 했다. “우린 서로에 대해 아직 잘 모르니 더 알아갔으면 해요” 하고 희망을 주는 뉘앙스로 말하자 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와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압구정으로 건너가 두 번째 소개팅남인 금융맨과 차를 마셨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문자 메시지 진동이 계속 울렸다. 그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요즘 만나자는 사람이 있는데 계속 연락이 와서 좀 피곤하다고 살짝 말했다. 좋은 전략. 그가 더욱 긴장했다.
희망 고문하기 데이트의 강약 조절하기 무관심과 공감대 만들기 또 어떤 물고기를 낚아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