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 십층석탑 인연설 강우식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애인과의 데이트 약속장소는 늘 원각사 십층석탑 앞에서다. 이 탑에 서면 음경이 없는 부처님의 방 한칸에 전세들고 싶어진다. 부처님의 주소라서 자칫하면 소멸되는 전교(轉交)편지도 틀림없이 배달되리. 국보 제2호와 같은 여자를 맡겨놓고 안심하고 밥벌이를 나갈 수 있으리. 살아가다 피박을 잔뜩 뒤집어쓴 거덜난 인생이 되더라도 여기 와서는 만세를 불러도 동서남북 어느 길목에서나 넉넉함으로, 넉넉함으로 받아주리라. 애인이여, 애인이여 이 탑 앞에서 밑바닥이 제일 튼튼한 이치를 배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