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태어나 이제껏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난 '가야표준말'을 쓴다. 군대시절 팔도 사투리를 배우고, 군대억양이 좀 남아서 완전한 100% 가야표준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서울에 대한 지나친 문화집중 탓인지 아니면 TV같은 발달된 대중매체 탓인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서울말에 대한 강요를 많이 당하는 것같다. 아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문화적 박탈감과 소외감 그리고 상처받은 자존심에 알게 모르게 서러움을 느끼고 있는지.. 쩝,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일반화할 순 없겠다.-.-;
꼭이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서울말에 대해서도 우리 남쪽 사람들은 좀 간드러지고 '날리는' 말이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뭐랄까.. 좀 점잖은 맛이 없다고 할까.. 무게감이 좀 떨어진달까.. 한국사람들이 일본말에 대해 느끼는 어감 비슷하다고 하면 좀 지나친 것인지... 암튼, 그런 느낌이다.
뭐 좋다. 발달되고 큰 동네로 문화의 쏠림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교양있는 서울 중산층이 쓰는 말'인 표준말에 대한 정의도 인정한다. 어느 나라에나 표준말은 있는 것이고 나라의 통일된 언어정책과 동일한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방송 등에서 지나치게 강요당하는 것은 좀 기분나쁘지만..
서울말은 대개 전 지역에서 별 어려움 없이 알아들을 수 있고 또 어감적으로 별로 큰 의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가야표준어를 구사하는 이 경남지역에서도 별반 어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내가 참... 도저히 이해 안가고 받아들일 수 없는 '서울 사투리'가 있다.
두개가 있는데, 두개 다 군대 있을 때 서울출신들한테 들은 말이었다. 그 '문제적 서울 사투리'가 뭔고 하니 바로 "더운 물" 과 "닦는다"는 말이다.
먼저 '더운 물'... 이런 말 가야표준말에는 없다. 그런데 서울지역에서는 흔히 쓰는 말인가 보다. TV에서도 가끔씩 쓰는 걸 본 적이 있다. 이게 왜 어색한지 서울사람들은 잘 모르는지..
'덥다', '춥다' 하는 것은 사람의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어떤 사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는 흔히 쓰지 않는다. 사물의 상태를 표현할 때는 '따뜻하다', '차갑다' 등으로 쓴다. 더운 것은 사람이 더운 것이지 어떻게 물이 더울 수 있는가.. 물은 따뜻할 수 있을 지언정 '더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차가운 물은 있을 지언정 추운 물은 있을 수 없다. 물이 어떻게 추울 수 있겠는가.
요컨대 덥다, 춥다 하는 것은 사람의 느낌을 형용하는 말인 것이다. 사물의 상태를 형용하는 말이 아니다. 서울 사람들은 이걸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난 "더운 물"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히 옳지않은 표현인 것같고, 대한민국의 전 지역에서 공통된 어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여지없이 '서울 사투리'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두번째로, 닦는다... 뭐, 닦는다는 말이야 아마 전지역에서 다 쓸텐데, 이게 좀 어색한 것은, 서울 사람들은 이 말을 '씻는다' 와 동일한 용법으로 쓴다는 것이다. 쩝, 다른 지역은 모르겠는데 내가 사는 경남 지역에서는 이 두가지를 분명히 구별해서 쓴다.
닦는 것은 뭐가 묻었을 때 그냥 문질러서 없애는 것이고, 물로 씻어서 없앨 때는 반드시 '씻는다'고 한다. 가야 표준말로는 '씩는다' 이다. ^ ^ 암튼, 집에 들어와서 얼굴을 '씻고', 발을 '씻는' 것이지 얼굴 '닦고' 발 '닦는' 것은 서울 사람들이다. 이상하다... 희한하네?~~
"야, 세면장 가서 발닦고 와."
내가 군대에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고참이 날더러 걸레로 대충 닦고 오라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면장 가서 걸레로 닦는 것은 코미디인 것 같아서 결국 씻고 왔는데 나중에 그들은 씻는 걸 '닦는다'라고 표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의 그 이질감이란...
왜 닦는다고 할까... 닦는 건 뭐 걸레로 방바닥을 닦거나 가구를 닦거나 책상을 닦거나 하여튼 뭐 묻었을 때 쓰는 말이지, 사람의 몸을 물로 씻는 것을 '닦는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난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확실한 구분은, 얼굴에 검정이 묻었을 때, 임시적으로 손이나 휴지 같은 걸로 스윽 훔쳐내면 '닦는' 것이고, 물에 가서 물로 씻어내는 것이 '씻는' 것이었다. 뭐 그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아마도 씻는 것과 닦는 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은 서울의 일부 사람들만 쓰는 언어습관이 아닌가 한다. 물어볼 만한 서울 사람을 알지 못해서 아직 확인은 못해봤다. 서울 사람은 다 그렇게 쓰는지... 혹여, 이글을 보시는 서울 분이 있으시면 좀 가르쳐 줬으면 한다.
아무튼, 이렇게 두 가지가 일반적으로 통용 안되는 서울 지역의 특별한 언어관습이다. 두개 다 있는 말인데 용법이 틀린 것이라, 엄밀히 사투리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냥 특별한 표현이 생각 안나서 그렇게 불러봤다.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이 무조건 표준어가 될 수는 없다는 내 신념(?)으로...
최근에 또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 '겁시난다' 이다. 말이란 변하는 것이라 ㅂ받침 밑에 ㅅ이 들어갈 수는 있다. '몫' 도 있고 '값' 도 있다. 그런데 '겁'에 ㅅ받침이 들어가는 건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도 서울의 일부지역에서 일부 사람들이 쓰는 것 같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다. 앞서 얘기한 대로 난 경남지역을 벗어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TV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 실수인지 광범하게 그렇게들 쓰는지 모르겠다.
가수 임창정이 자신의 노래에서 '...두려워 겁시 나.' 라고 노래 부르던데, 좀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생각했다. '겁'의 표현이 '겂'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나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중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중가요에서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신중치 못하고 적절하지도 않은 행동이라 본다. 그 후 수정을 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정말 '요상하다' 고 평소 생각한 표현들을 주저리 주저리 떠벌였는데, 어쩌면 내가 잘 못 안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일부 서울 사람들이 잘 못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