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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여제(女帝)가 된 한국의 딸 오은선
빙글빙글 | 2011.09.12 | 조회 12,585 | 추천 0 댓글 2

 



 


히말라야 여제(女帝)가 된


한국의 딸


오 은 선


13시간 사투 끝에 등정, KBS는 HD 생중계 성공


 


 


박빙의 승부였다. 그것도 목숨을 건. 오은선(45세·블랙야크) 대장이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 정점에 서서 태극기를 힘차게 펼쳐 들었다.


1997년 가셔브룸Ⅱ를 오른 후 14개 고봉 완등을 꿈꾼 지 13년만이다. 1993년 에베레스트 대원으로 히말라야를 만나고 나선 후 17년이 걸렸다. 오은선이 안나푸르나 정상을 향할 때, 이미 이 산을 오른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7세)은 헬기를 타고 훌쩍 시샤팡마로 떠났다. 승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면서.


두 여걸은 안나푸르나에서 13개 고봉으로 올라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 오은선은 안나푸르나가 남았고 에두르네는 시샤팡마가 남았다. 에두르네를 그녀의 베이스캠프에서 인터뷰 할 때 그녀는 1등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감추지 않았다.


히말라야 등반은 의지대로 되지 않는 불가항력인 요소가 많다. 눈사태, 크레바스, 고소증, 제트기류, 동상, 폭설. 이러한 자연적 재해 외에도 발목 한 번 삐끗하더라도 순위가 바뀐다. 그러므로 아직 아무도 승부를 모른다. 숨 가쁘게 진행 된 안나푸르나 등반 현장을 지켜 본 소감이 그랬다. 두 여성의 각축을 지켜보며 누가 최초 14개 고봉 완등자가 될 것인가 조마조마했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최초가 될 사람은.  


안나푸르나보다 등반이 수월하다는 시샤팡마는 에두르네가 4번이나 실패한 산이다. 그녀가 너무 잘 아는 산이다. 그건 이번 에두르네의 속공등반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에두르네는 안나푸르나를 오름으로서 고소 적응은 이미 완벽하게 끝났다. 오은선도 작년 봄 칸첸중가를 마치고 헬기로 다울라기리로 이동한 다음 3박 4일 만에 그 정수리에 섰다. 역시 칸첸중가에서 고소 적응이 된 상황이라 그렇다.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에두르네는 시샤팡마에 셀파를 미리 파견하여 정상까지 고정로프를 깔아 놓았다고 그 팀 셀파들이 귀띔한다.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고 산악인들은 말하지만 그 행위에 스포츠적 요소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도대체 세상에 이런 경기가 있을까?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골인지점이 지척인데 오은선과 에두르네는 그 시각, 13개 고봉 성공으로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고 있다. 2시간대에 끝나는 마라톤 시합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10년이 넘게 달려 온 14개 고봉 완등 경쟁의 종착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힘겨워 포기하고 싶었던 등반


안나푸르나는 작년 가을처럼 이번에도 오은선을 쉽게 받아 줄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년보다 더 지독한 통과의례를 오은선에게 요구했다.


오은선은 22일 새벽 안나푸르나 정상을 향해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영하의 날씨 속 라마제단에 피어오르는 향불 연기 앞에 입산신고를 하는 오은선과 KBS 정하영 촬영감독 그리고 역시 촬영을 담당한 나관주 대원, 옹추, 펨바, 체지 세 명의 셀파 표정이 비장하다.


무사 등정을 기원한 오은선은 정상을 오르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쩐지 투지가 살아나지 않네요.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예전 같으면 하얀 산을 마주하면 신이 났었는데 요즈음 왠지 모르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좀 두려워요.”


출발하기 전날, 둘이 있을 때 오은선은 그런 말을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생방송 요원 23명과 많은 카메라, 국내 유수의 신문기자들 사이에서 오은선이 받았을 중압감을.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은선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현실은 냉정하다.    


“방송에 부담 가질 이유가 없어요. 만약 등정에 실패해도 방송은 만들어 집니다. 그런 거 의식하지 말고 평소대로 하세요. 아무도 당신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그 멀고 길었던 14좌 마지막 봉우리가 눈앞에 있잖아요. 평상심을 찾아 그대로 하세요. 자신을 믿으세요. 당신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건네며 안타까웠다. 내가 보기에도 수십 명의 남자 틈에 유일한 여성이자 주인공인 오은선이 받을 스포트라이트는 또 다른 부담이 틀림없었다.


“어제 밤 꿈을 꾸었어요. 운전을 하며 어딘가를 가는데… 다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과속을 하지 말라는 어떤 계시 같은 거였어요.”


신 새벽, 정상을 향해 출발하는 오은선과 함께 아침을 먹을 때 그녀는 꿈 이야기를 했다.  과속이라니… 지금 오은선은 겁을 먹고 있는가? 이제 대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첫 발을 떼는데 과속을 말하다니. 오은선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발하는 오은선과 故지현옥 추모비까지 오르기로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태양은 아직 뜨지 않았다. 안나푸르나 하얀 봉우리는 날을 세운 것 처럼 절대 고요 속에 하얀 장벽으로 서있다.


“기온이 떨어지면 불편한 건 사실이나 등반하기는 더 좋아요. 눈 표면이 얼어붙어 아이젠 발톱이 확실히 먹히고 얼음기둥도 안정되어 눈사태 위험도 그만큼 적어지니까요. 무슨 향기인지 모르지만 이 고산에도 향기가 있어요. 이 냄새 모르시겠어요?”


오은선은 그작년 실패에 이어 올 등반을 통해 익숙한 안나푸르나 산 속으로 들어서니 이제 안정을 찾은 듯 했다. 적이 안심이 된다. 오은선은 오늘 해발 5600미터 2캠프까지 오른다. 23일은 6400미터 3캠프로 진출, 24일은 7200미터 4캠프로 올라가 잠시 쉰 후 25일 새벽, 결승점이자 길고, 험했고, 춥고, 멀었던 여정이 끝나는 정상으로 향할 계획이다. 물론 모든 조건이 맞아 떨러진다는 상황에서의 계획이다. 종잡을 수 없는 히말라야 날씨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그 외에도 강풍과 크레바스, 눈사태와 혹한의 기온 역시 정상등정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세계최초 여성 완등자를 놓고 박빙의 승부가 25일 전후로 갈라지는 것이다. 현재 안나푸르나를 올라 오은선과 나란히 13개 고봉을 마친 기록한 에두르네가 20일 헬기편으로 마지막 대상산인 시샤팡마로 떠났다. 시샤팡마를 밀어 붙여 막판 뒤집기를 시도한다는 게 에두르네를 만났을 때 그녀가 나에게 공개한 복안이었다. 그런 걸 모를 리 없는 오은선은 그러나 베이스캠프에서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오은선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추모비까지 올랐다. 그 빠른 발걸음을 따라가기 힘들다. 11년전 이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하산 중 실종 된 오은선의 선배 故지현옥의 추모탑에 도착한 그녀는 색 바랜 고인의 사진 앞에 묵념을 올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언니, 언니 몫까지 다 할게요. 저를 도와주세요.”


듣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도와 달라는 간절한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동행은 거기까지였고 오은선은 셰르파와 등반길에 나섰다. 그녀가 올라가는 등반로 끝에 안나푸르나는 시공을 초월한 높이와 질량으로 거대한 장막처럼 서있다. 오은선 대장은 안나푸르나 그 비현실적인 백색 세상으로 녹아드는 하나의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사태와 마나슬루 사고


그러나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 온 베이스캠프에는 슬픈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나슬루에선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작년 가을에 이곳에서 오은선과 함께 등반했던 김홍빈 대장이 이끄는 마나슬루 원정대의 사고였다. 외교통상부 발표에 의하면 윤치원, 박행수 대원은 사망했고 나머지 대원은 심한 동상을 입은 채 구조 헬기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고 했다. 또 하나의 나쁜 소식이 잇달아 전해졌다. 초오유를 등정한 후 이곳 안나푸르나로 오겠다던 김재수 대장이 정상 바로 밑에서 코와 발가락에 심한 동상을 입고 철수했다는 뉴스였다.


그런 아픈 소식을 힘겹게 등반 중인 오은선에게 알릴 이유는 없었다. 집중력을 흐트려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베이스캠프에서 할 일은 등정 예정일인 25일까지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는 일만 남았다.  


23일, 어제 2캠프로 진출한 오은선으로부터 베이스캠프로 무전이 왔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오늘 내일 날씨가 궁금하다. 한국으로 연락해 정확한 일기 예보를 알려주기 바란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오은선의 후배 이국향씨로부터 받는 일기예보는 매일, 매 시간 바뀐다. 오은선의 다급한 무전은 3캠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은유였다. 한국으로 이국향씨에게 위성전화를 걸어 일기 예보를 받았다. 개략적인 예보는 25, 26일은 제트기류의 영향을 받아 바람이 세게 불다 점차 약해지며 소낙눈이 산발적으로 내린 다는 것. 일기예보가 백퍼센트 맞는 건 아니지만 등반에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건 확실하다. 좀 더 세부적인 예보도 받았다. 24, 25, 26, 27일 고도별 일기예보다.


오은선이 등정일로 잡았던 25일은 7000미터 이상에서는 초속 18미터, 8000미터 이상은 초속 20미터의 바람이 부는 걸로 나타났다. 시속으로 따지면 70킬로미터쯤 되는 바람 세기다. 등반을 강행할 수는 있으나 쉽지 않다.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위해 일본 팀, 이란 팀을 방문, 그들의 일기예보를 취합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기상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23일 2캠프에서 오은선은 새벽 5시 40분 등반을 속개했다. 2캠프에서 3캠프까지가 가장 어렵고 위험한 구간이다. 이 루트는 상습적 눈사태 지역이었다. 이틀 전에도 이곳에서 후아니또 팀 두 명이 눈사태로 부상을 입고 후퇴한 곳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오은선이 그곳을 통과하는 모습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눈사태다!” 그때가 아침 7시였다. 1캠프의 망원렌즈에 잡힌 눈사태는 초대형이었다. 마치 과학영화 CG처럼, 해일처럼 모니터를 꽉 채우며 오은선 앞에 선 3명의 셀파를 덮치듯 쏟아져 내렸다. 1캠프에서 망원 카메라를 담당한 KBS 홍성준 감독이 “안 돼! 안 돼! 엎드려!” 비명처럼 외치는 고함 소리가 방송센터 모니터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거리까지 목소리가 도달할리는 만무. 쏟아지는 눈폭풍은 셀파를 지우고 설원을 횡단 중인 오은선에 이르러서는 뭉게구름처럼 거대한 눈꽃으로 피어났다. 모니터에 오은선과 일행이 엎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베이스캠프는 공포에 휩싸였다. 눈보라가 서서히 걷히자 고정로프에 매달렸던 셀파들이 하나 둘 일어나는 모습이 잡혔다. 역시 엎드려 있던 오은선을 비롯한 대원들도 일어서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에서 모니터를 주시하던 요원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다행이 모두 무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눈사태 후폭풍으로 이란 대원 한 명은 300미터를 날아가 부상을 입고 철수를 했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런 위험에도 오 대장은 등반을 계속해 오후 1시 40분 3캠프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눈사태 영향으로 캠프를 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짐만 그곳에 놓아 둔 채 좀 더 아래로 내려와 그 밤을 지내기로 했다.


오은선이 다시 베이스캠프로 무전을 걸어왔다. 베이스캠프는 등반 중인 오은선이 연락을 취하기 전엔 베이스캠프에서 먼저 무전을 걸지 않는다. 무전 받는 것조차 힘이 들기에 연락을 기다려야만 한다.


“바람이 무척 셉니다. 그러나 우리는 3캠프에 머물고 셀파들은 4캠프까지 짐을 수송하기로 했습니다. 일기예보를 알려 주십시오.”


베이스캠프는 새벽부터 취합한 향후 몇 일간의 기상상태를 불러줬다.


“잘 알았습니다. 후아니또 팀은 어떻습니까?”


스페인 산악인 후아니또는 엄홍길 대장과 함께 8000미터급 5개 봉을 오른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1999년 故지현옥과 시차를 두고 정상을 올랐으며 지현옥의 죽음을 제일 먼저 알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간밤에 우리를 찾아 와 기상상황에 대한 정보를 묻고는 자신은 27일 정상에 오를 것이며 내일(24일) 2캠프로 진출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후아니또는 오늘 아침 7시 30분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오은선이 후아니또에 대하여 물었던 의중이 이심전심으로 전해 온다. 오은선의 말은 단독 등정이 아니라 후아니또 팀을 기다려 함께 정상을 오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후퇴


다시 오은선이 베이스캠프를 호출했다.


“지금 4캠프로 출발했던 셀파들이 오전에 모두 3캠프로 철수했습니다. 바람이 보통 센 게 아니에요.”


베이스캠프에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고 쉴 사이 없이 천둥과 번개가 안나푸르나 상공에 요란했다. 쏟아지는 우박은 베이스캠프에 쳐 놓은 텐트를 무너트리기 충분했기에 전 대원은 비상이 걸렸다. 번개가 칠 적마다 안나푸르나는 악마의 이빨처럼 번뜩였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요. 1캠프로 철수합니다.”


무전을 통해 들리는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베이스캠프는 침울해졌다. 누구도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번 철수 결정으로 모든 게 어그러졌다. 생방송팀의 편성도 그렇고 보도 계획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보다 오은선 개인에게 중요한 건 오늘 아침 카트만두를 떠나 시샤팡마로 향 한 에두르네와 최초의 자리를 놓고 하는 경쟁이다. 만약 날씨 때문에 등반이 늦어진다면 박빙의 승부를 떠나, 오은선이 2009년 에두르네를 뒤집기에 성공한 것처럼 다시 선두가 바뀔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철수 결정과 등반의 모든 판단은 대장의 몫이다.


베이스캠프가 4200미터. 오은선이 머물고 있는 3캠프가 6400미터. 고도차 2200미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백색의 세계. 그곳에서 오 대장은 하산을 시작했다. 오은선의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베이스캠프는 깊은 침묵에 빠져있는 것이다.


오은선이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할 즈음 천둥과 함께 플래시가 터지듯 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로 입성한 이래 처음 겪는 악천후였다. 베이스캠프가 이럴 지경이면 고소캠프는 더 할 터였다. 그 신설에 발자국이 지워지고 힘들게 깔아 놓은 고정로프는 눈에 파묻혔을 터. 혹한의 기온에 얼음덩어리가 된 고정로프는 빠져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젠 정상공격보다는 하산을 걱정할 차례였다.


베이스캠프에서도 공포스러운 날씨였으니 3캠프는 오죽할까. 6400미터 고공에서 견디느니 차라리 악천후를 피해 5100미터 1캠프로 철수한다는 오 대장의 결정은 옳았다. 그곳엔 그나마 산소와 추위가 덜 할 터였다. 오후 2시경 전원 무사히 1캠프로 귀환했다는 연락이 있었다. 베이스캠프는 알 수 없는 침묵에 휩싸였다. 사상 최초로 HD(고화질) 생중계를 기획한 방송사 역시 계획이 미뤄졌다.


또 하나의 불안은 오은선이 아예 베이스캠프로 철수를 결정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등정일은 적어도 일주일 후에나 가능했다.  


오은선의 말처럼 ‘산이 받아 준다면’이란 전제가 들어맞는 곳이 히말라야다. 첫번째 공격의 무산은 숨막히는 질주를 잠시 멈추고 숨 한 번 고르고 다시 시작하라는 경고였다.


다행이 오은선은 1캠프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튿날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려 두번째 공격에 나선 오 대장은 24일 1캠프를 출발해 25일 2캠프에 도착했다. 하루를 쉰 후 26일 오전 4시 20분 출발, 눈사태 상습 위험지대를 벗어나 오전 9시 3캠프에 도착했다. 3캠프에서 조금 쉰 후 곧 바로 4캠프로 출발했다. 오은선 특유의 캠프를 건너뛰는 ‘개구리전법’이었다. 오후에 7200미터의 4캠프에 도착한 오은선은 다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 고도에서 휴식이라는 건 고작 눈 녹인 뜨거운 물을 먹는 것이지 잠을 잘 형편이 되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오은선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춰질 때마다 베이스캠프는 탄식이 쏟아졌다.


 



 


히말라야는 끝내 오은선의 손을 들어주었다


작은 텐트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밤을 지새웠던 오은선이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고 알려왔다. 당연히 베이스캠프도 불 밝히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었다. 27일 새벽 1시 45분 출발한 오은선이 다시 모니터에 등장한 것은 새벽 5시경. 셰르파 체지는 오은선, 옹추는 정하영 감독, 페마는 나관주 대원의 촬영을 돕고 있다. 오은선과 셀파는 무산소였고 두 명의 촬영 대원은 산소를 사용하고 있었다.


날씨는 좋았다. 안나푸르나 봉우리에 긴 꼬리의 설연(눈연기)이 날리고 하늘은 검푸르다. 파이프 담배연기처럼 8000미터 상공을 길게 흐르는 설연은 눈보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해발 8000미터 이상의 눈 표면이 얼어붙은 얼음 조각을 파내어 그 속살을 날리는 것이다. 그 바람을 등반가들은 제트기류라 부른다. 작년 가을에도 저 설연 때문에 오은선은 등정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6명의 대원은 개미처럼 행렬을 이룬 채 거대한 설원을 거슬러 오르는 중이었다. 그 밑으로는 거대한 절벽이 악마의 입처럼 보였다. 오은선은 굼벵이처럼 속도가 느렸다. 저렇게 전진하다가는 정상을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스멀거리며 밀려왔다.  


그러나 오은선은 자벌레처럼 느리지만 쉬지 않았다. 오전 10시 드디어 생방송이 한국으로 연결되었고 오은선의 고군분투를 한국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KBS 본사 스튜디오에는 엄홍길 대장이 해설자로, 베이스캠프 임시 스튜디오에는 내가 해설을 맡아 방송에 참여했다.


요술처럼 눈앞 모니터에 나타나는 오은선은 몹시 힘겨워보였다. 피켈에 의지한 채 몸을 굽혀 쉬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산소도 모자란 그 찬 공기를 흡입하며 얼마나 폐가 아플까! 무산소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마지막 정상으로 오르는 꿀르와르(눈 덮인 계곡)에 도착했다. 경사각이 장난이 아니다. 거기서 오은선은 상당시간을 멈춰서 있었다. 그건 또 다른 불안이었다. 저러다 돌아 서는 것이 아닌지 모두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은선은 다시 정상을 향하여 발을 떼었다. 또 다시 베이스캠프에서는 환호가 터졌다. 곁에 있는 유지철 아나운서가 중계를 잊은 듯 울먹이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기 바랍니다!”


그런 바람이 전해진 것일까? 한국의 오은선 대장이 드디어 해냈다. 27일, 네팔 현지 시간으로 오후 3시. 8091미터 안나푸르나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고봉 14개를 모조리 오른 인류 최초의 여성산악인이 된 오은선.


히말라야가 모두 오은선 대장 발아래 보였다. 자신이 피켈에 매달아 치켜 든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였다. 8000미터 이상의 백색 세계. 신들의 영역이라 불리는 안나푸르나 정상. 작년의 좌절을 딛고 재도전 끝에 성공한 안나푸르나 봉의 꼭지점.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세계 최초라는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기억하지만 2등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역시 남자 최초로 14개 고봉 완등을 기록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기억하지만 2등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절대 깨지지 않을 최초의 인간을 한명 보유하게 되었다.


정하영 감독이 촬영을 하며 오은선에게 건네는 말이 생중계 된다. “당신은 히말라야의 여왕입니다!” 정 감독은 울고 있었다. 그가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유지철 아나운서가 물기 먹은 목소리로 오은선을 호출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오 대장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정상입니다. 너무 기쁩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바람 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으나 오은선도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밤 새워 오은선을 추적하던 베이스캠프에서도 서로 껴안고 감격의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영광의 하산


돌이켜보면 정상 등정과정은 영하의 날씨를 녹이게 할 만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드라마틱한 반전의 연속이었다. 이마등을 켜고 7200미터의 최종캠프를 떠난 오 대장과은 파상, 옹추, 체지 세 명의 셀파는 두 명의 촬영 대원과 함께 13시간 15분이 걸려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다. 낮은 기압과 지상의 삼분의 일도 못 미치는 산소량. 그리고 몸을 날려버릴 것처럼 세찬 제트기류를 뚫고 오은선 대장이 그녀의 14개 고봉 마지막 정상에 선 것.


방송센터에서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이거종 단장과 김태민 책임PD의 피를 말렸다. 오후만 되면 구름이 안나푸르나 정상을 감싸는 걸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힘들여 올려 보낸 두 대의 카메라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망원카메라까지도. 그러나 그날은 날씨마저 쾌청해 오은선 편을 들어 주었다.


“저를 지켜봐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 사랑하는 나의 가족, 블랙야크 임직원 여러분.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이제 사진을 찍고 하산합니다.”


등정의 흥분이 가시자 베이스캠프는 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등반 사고의 반 이상이 하산 길에서 일어난다. 정상은 종점이 아니라 반환점이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 오은선이 무사히 최종캠프에 도착하기 까지는 아무도 안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미영씨의 사진을 안나푸르나 정상에 묻으려 했지만 정상은 너무 춥고 가혹한 환경입니다. 내려가 따듯한 곳에 묻어야겠어요.”


안나푸르나를 함께 오르자고 고미영 생전에 약속했었다. 오 대장은 그 약속을 2010년 4월 27일 오후 3시에 지켰다. 생방송 중계로 개인적 말을 삼가던 오 대장은 무전 통화에서 그때서야 여유가 생겼는지 소감을 전해 왔다. 오은선이 자랑스러웠다. 최고봉 한라산 높이가 2000미터를 넘지 않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알프스를 대상으로 훈련을 했던 소위 유럽 세 명의 소프라노를 제치고 일등으로 등극한 것이다.


 


작년 가을 1차 실패 후 오은선 대장은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라마제단 앞에서 울었다. 울며 말했다. “무사하게 돌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봄에 다시 오겠습니다.” 정상을 오르는 데는 비록 실패했지만 살려 내려 보내 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 오은선은 약속을 지켜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았으며 이번엔 정상에 서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오은선이 운 것이 어디 한 번 뿐일까. 14개 고봉 완등을 이뤄내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득한 백색 무생물의 세계의 8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는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린다. 오은선은 뭍으로 끌어 올려 진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거리며 찢어지는 가슴의 통증을 견뎌야 했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기온 속에 발가락 손가락 동상의 위협을 참아 내야 했다. 무산소로 폭풍설을 뚫고 행했던 그 끔직한 체험들. 그 과정에서 눈앞 혹은 발아래서 추락해 갔던 사람들.


그런 경각에 달린 죽음의 공포에 울었고 실패와 좌절 때문에도 울었다. 그러나 이번 눈물은 다르다. 여성 최초로 해냈다는 성취의 눈물이고 아직도 살아 있음에 고마운 울음이었다. 아니다. 이젠 그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히말라야 등반을 멈춰도 된다는 안도의 눈물일 수도 있다. 오은선은 안나푸르나 등반을 할 때마다 등산로에 서 있는 故지현옥 추모탑에 서서   “언니, 도와주세요. 언니 몫까지 다 이루겠습니다”던 약속도 지켜냈다.


네팔과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아우르며 오은선의 등반을 밀착하며 지켜보았던 느낌은 각별했다. 그러다 홀연히 깨달았다. 오은선 대장은 대단한 집념의 소유자인 동시에 운이 좋은 여자라는 것이다. 무생물의 세계에서 끝내 살아남아 대위업을 달성했으므로.


 


에두르네 파사반 시샤팡마 등정 성공


한편, 에두르네 파사반이 시샤팡마에 올랐다. 에두르네는 현지 시간 5월 17일 오전 11시 30분, 시샤팡마 등정에 성공했다. 에두르네 팀은 새벽 4시, 7400미터에 위치한 4캠프를 출발해 6시간이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시샤팡마 도전이 다섯번째인 에두르네가 결국 14개 고봉 완등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오은선의 뒤를 이어 세계 2번째 14개 고봉을 완등한 여성이 되었다. 하지만 막판 뒤집기에 나섰던 그녀로서는 매우 안타까웠던 부분이다. 시샤팡마 날씨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베이스캠프로 이동할 야크를 찾지 못하여 등반이 늦어 진 것도 등정에 영향을 주었다.


오은선 등정이 4월 27일이니까 꼭 20일 뒤늦은 완등이었다. 에두르네의 등정 소식은 즉각 AP와 AFP를 통하여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통신사들은 에두르네의 완등이, 한국의 오은선에 이은 세계 여성 두번째라고 보도했다. 스페인의 유력지이자 에두르네의 문제제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엘 몬도(El Mundo)>지도 에두르네 완등을 축하하며 한국의 오은선에 이은 세계 여성 두번째라고 공식 보도했다. 그 신문의 네팔 주재 페르난도 페레즈(Fernando J Perez) 기자와 필자는 카트만두 야크 앤 예티 호텔에서 만나 서로 취재를 한 바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와의 만남 이전까지 의혹으로 몰고 가던 스페인 언론들도 대다수가 에두르네를 두번째로 보도하고 있다. 오은선은 그녀에게 비판적이었던 스페인의 언론으로부터도 세계 여성 최초 14개 고봉 완등정자로 인정받음으로써, 더 이상 의혹에 시달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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