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유명 산부인과에서 영양제 처방을 받은 임신부에게 실수로 낙태 수술을 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러 병원에 왔던 임신부는 어이없는 의료진의 실수로 배 속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환자 확인 절차 없이 낙태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의사 A 씨와 환자 차트를 착각한 간호사 B 씨를 ‘부동의 낙태’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베트남 여성 C 씨는 지난달 7일 오후 남편과 함께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 산부인과를 찾았다. C 씨는 임신 6주 진단과 함께 영양수액을 처방 받았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C 씨는 진료실을 나와 수액을 맞기 위해 한 층 위의 분만실로 이동했다. 이때 B 씨는 ‘계류 유산’(배 속의 태아가 이미 죽었는데도 자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으로 임신 중절을 받으러 온 다른 환자의 차트를 들고 C 씨를 맞았다. 병원 침대에 누운 C 씨에게 B 씨는 환자 본인이 맞는지 물어보지 않고 수액 대신 수면마취제를 투여했다. C 씨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분만실을 찾은 A 씨 역시 환자 이름을 확인하지 않은 채 낙태 수술을 집도했다. 전체 수술 시간은 30분 이내였다.
수면 마취에서 깨어난 C 씨는 자신이 하혈한 사실을 알고 병원에 문의했다. 하지만 병원은 ‘의사가 퇴근했다’며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하혈 증세가 이어지자 C 씨는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때 다른 의사는 C 씨를 검사하더니 “배 속의 아기가 낙태됐다”고 말했다. C 씨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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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입건된 의사와 간호사에게 적용할 혐의를 검토 중이다. C 씨 부부는 의료진을 ‘부동의 낙태죄’로 경찰에 신고했다. 현행법상 임신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C 씨가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인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반대 의사 표현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동의 낙태죄 성립이 어려워 경찰이 고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법상 ‘설명의무’를 적용하면 과태료 300만 원 이하로 처벌 수위가 약해 적용 혐의를 법적으로 꼼꼼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병원의 안전관리 부실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현정 의료사건 전문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술대에 누워 수술을 받기 전까지 단 한 명도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며 “환자가 뒤바뀌는 과정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집도한 A 씨는 사건 발생 후 해당 산부인과를 그만두고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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