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씨름 인기 되살아나 대학생 박은지(24·가명)씨는 최근 씨름에 '입덕(팬이 됐다는 뜻의 은어)' 했다. 계기는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된 '제15회 학산배 전국장사 씨름대회 단체전 결승 김원진 vs 황찬섭' 경기 영상이다. 영상 속 김원진 선수와 황찬섭 선수는 75㎏ 이하인 '경장급'이었다. 박씨는 "씨름 선수는 덩치만 크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영상 속 선수들은 몸매는 근육질에 얼굴도 잘생겼다"며 "가수, 배우 같은 연예인에게도 관심이 없는 내가 씨름 '덕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박씨가 봤다는 씨름 경기 영상은 올라온 지 1년 만에 조회 수가 급상승하더니, 지난 3일 기준 180만 회를 기록했다. 유명 유튜버가 올리는 영상이라도 180만 회는 손에 꼽는다. 젊은 층에 외면받던 씨름 영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이례적이다. 이 영상의 베스트 댓글은 "이 좋은 걸 할아버지들만 보고 있었네" "아, 몰랐는데 나 씨름 좋아하네" 등이다. 씨름 명경기 하이라이트를 모은 '이건 그냥 미친 경기다', 최근 씨름 트렌드를 소개하는 '요즘 씨름 선수들은 왜 다 몸이 좋을까?' 영상은 각각 85만, 56만(3일 기준)을 기록했다.
씨름 선수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오빠 덕에 씨름 챙겨보게 됐어요" "이번 전국체전 반드시 우승!"과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영상 속 주인공인 황찬섭 선수는 최근 몇 주 동안 '팔로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면서 "점점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많아지네요. 댓글이나 디엠으로 많은 응원 오는데 일일이 답 못 드려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상대 선수였던 김원진, 비슷한 체급인 박정우, 허선행 선수들의 소셜미디어도 덩달아 팔로어 수가 늘어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는 인기가 많은 선수를 모아 검은 배경에 선수들이 포즈를 잡고 있는 '나는 씨름 선수다'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씨름계는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는 입장이다. 이만기, 강호동 시대 이후 씨름은 지루한 샅바 싸움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신장이 200㎝ 이상이거나 체중 150㎏이 넘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화려한 뒤집기보다는 버티는 수비 씨름이 더 높은 승률을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80~90㎏의 '날렵'한 몸으로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들은 천하장사 대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대한씨름협회는 빠르고 화려한 경기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해 초 규정들을 개정했다. 먼저 최고 체중을 150㎏에서 140㎏으로 낮추고, 각 체급도 5~10㎏ 정도 하향시켰다. 체급 기준 10㎏ 변경은 힘을 겨루는 운동 종목에서는 이례적이다. 내부 반발을 우려해 개정 2~3년 전부터 감독들에게 선수들이 감량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언질도 줬다. 밀어내기만으로 승부가 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장외 패'를 없애고, 경기가 늘어진다는 지적에 '더 잡기'(연장전)는 명절 민속대회 때만 허용하도록 했다. 협회 관계자는 "선수들이 바뀐 규정에 적응하려 민첩성을 위해 체중을 감량하고, 단번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기술을 쓰게 됐다"고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끈 요인을 분석했다.
인기에 힘입어 KBS2는 씨름 선수들이 출연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을 11월 말에 내보낼 예정이다. 대한씨름협회와 KBS2 등에 따르면 올해 추석 전 촬영을 시작했고, 최근 주목받은 선수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경량급 천하장사' 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대한씨름협회 관계자는 "백두, 한라급에 가려져 있던 선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씨름을 볼 수 있다"며 "내년에는 프로 씨름 리그도 출범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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