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소, 염소, 물소, 양 등의 동물의 젖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응고된 식료품. 치즈 치즈는 지금까지 알려진 종류가 2천 가지에 달하고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도 5백 가지에 육박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치즈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제조법이 완성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치즈의 좋은 맛을 하늘이 내린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BC 900년경의 작품인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이미 치즈의 제조와 관련된 묘사가 나온다. 율리시스가 양치기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까브(cave) 안에서 발견한 젖 담는 통들, 뿌옇게 흐르는 훼이, 거르는 체와 쌓인 치즈들은 당시의 양젖치즈제조법을 짐작하게 해준다. 후대에 와서는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등이 치즈를 만드는 젖과 치즈의 영양 등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이 있다. 로마에 이르러 치즈는 만드는 기술이 세련되어졌다. 응고제로 엉겅퀴나 무화과 즙 등이 쓰이다가 BC 1세기 이전에 레닛(rennet:응유효소)의 사용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저택에는 따로 치즈 키친과 더불어 숙성실을 두고 있었고, 시내에는 훈제해주는 센터가 있었다. 치즈는 황제와 귀족의 연회에 오르는 단골 메뉴였다. 특히 경질치즈는 레기온(legion: 로마의 보병군단)의 필수 휴대품이었는데, 이는 경질치즈 제조법이 각지로 전파되는 것을 도왔다. 로마에서 'caseus'로 일컬어지던 치즈는 고대영어 'cese'와 중세영어 'chese'를 거쳐 지금의 'cheese'로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라틴어 'formaticus(곰팡이로 만들어진)'를 어원으로 하는 'formage'가 변하여 치즈를 가리키는 '프로마주(fromage)'로 쓰이고 있다. 로마제국이 쇠락하고 주변민족의 침입과 페스트 등 전염병이 퍼지면서 유럽이 암흑기에 접어든 뒤로 치즈의 제조기술도 점차 쇠퇴했다. 이 시기에 중세 각지의 수도원들은 치즈의 제조기술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고, 이를 농민들에게 전수하였다. 오늘날 유명한 치즈들 중에 이름이나 기원에서 수도원이나 수도사와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생유(生乳)의 위생문제에 대해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치즈 먹기를 꺼렸지만, 19세기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과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치즈는 다시 인기 높은 식품이 되었다. 치즈가 공업적 규모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851년 미국 뉴욕 주에서 윌리엄스(Jesse Williams)라는 사람이 소규모로 체더(Cheddar) 공장을 차린 때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후 서양식 음식문화가 소개되면서 수입된 치즈가 유포되기 시작하여, 1975년부터 국내에서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하면서 국내 치즈의 소비량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치즈의 타입과 풍미를 결정하는 것은 수유동물의 품종, 사료, 밀크의 지방함유량, 제조단계별 처리방식, 숙성기간 등이며 특히,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 미생물은 대개 지역적으로 발달된 것들로 치즈를 원산지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치즈 생산국들은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전통적인 치즈에 대해서 원산지명칭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참조항목가공치즈, 낙농업, 로크포르, 블루치즈, 산유치즈, 삼소치즈, 에멘탈, 연질치즈, 크라우터치즈, 크래프트, 하우다, 퐁뒤, AO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