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꽃자리에 연두빛 신록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남도의 절들에서는 차 따기가 한창이다. 옛 문헌에는 곡우를 전후하여 따는차가 가장 상품이라고 했는데 우리 조계산에서는 그 무렵이면 좀 빠르고 입하 무렵에 첫 차를 따는 것이 가장 알맞다. 이곳 선원에서도 엊그제 한 차례 따다가 볶았고, 오늘 대중들이 나가 또 한 차례 따왔다. 예년 같으면 나도 아랫마을 사람들을 몇 데리고 따로 차를 땃을 텐데, 올봄에는 하는 일이 많아 짬이 없을뿐더러 이제는 대중 속에 섞여 살 게 되었으니 나누어 주는 한 몫으로 족할 수밖에 없다. 차잎이 펼쳐지는 걸 보면 하루가 다르다. 그래서 바쁜 일에 쫓기다 보면 하루 이틀 사이에 적기를 놓치고 말 때가 더러 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고유의 녹차에는 별 관심들이 없어 절에서도 극히 소수의 스님들만 즐겨 마셨다.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차에 대한 인식이 새로와 안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선원에서는 졸음을 쫒고 맑은 정신으로 정진하기 위해서라도 많이 마시고 있다. 물론 기호식품이란 굳이 약리적인 효과를 노리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차의 향기와 맛과 빛깔을 음미하고 그릇을 만지는 그일 자체가 삶의 여백처럼 은은해서 즐거운 것이다. 요즘 우리 고유의 전통차에 대한 관심의 바람을 타고, 경향 각지에서 차의 붐이 일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일없는 사람들이 너무 극성들을 떠는 바람에 담박하고 순수한 차 맛에 어떤 흠이 가지 않을 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