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 - 서정윤- 죽음조차 열차 위를 지나는 바람인 것을 좀더 용기없이 허물어져 버린 이 밤을, 비는 적시고 있다.
까만 기억 속의 밤 잃어버린 그 흔적은 되쌓을 수 없고 그것을 알지라도 헤매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빗속에 씻고 있다 비가 내린다 우리가 살아 있듯이 비가 내린다 그 밤은 내가 아니다 되돌아볼 수도 없는 자신의 영혼 그 눈물의 침묵 속에서 그러나 내리는 건 굳게 닫혀진 인간의 절벽들 스스로의 초라함만 던지고 있다 빗속에서 영혼의 소리가 살아난다 허무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여라 절망하면서 더욱 자신을 지켜야 한다 도저히 숨을 수 없는 그 소리에 몸서리치며 자신의 삶을 확인하고
비에도 씻겨지지 않는 이마의 표식에 도전하며 가끔은 밤이 낯설듯 살아 있음이 생소할지라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나에게는 용서할 아무것도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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