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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주식으로 대박 터뜨리기
여우골 | 2011.08.18 | 조회 17,892 | 추천 96 댓글 0


[실화] 주식으로 대박 터뜨리기<41>


- 원제 <대박여행의 끝>


 


몇 년 전 모 은행 간부 20여 명 신용불량자로 전락합니다.


주식투자 실패 끝에 불명예퇴직을 결행한 이들은 결국 막다른 골목에 몰립니다. 


Y대 경영학 석사 출신 L대리도 어쩔 수 없이 사기 행각나섭니다.


이 실화 소설은 주인공 L씨의 극적인 체험담을 사실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묻지 마 주식투자와 사기꾼의 반란


   


맞보증(어깨보증) 은행 대출과 묻지 마 주식투자 실패 끝에 22개의 신용카드를 남기고 사라진 신용불량자. 그의 절박한 상황 타개와 사기꾼으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은 빚에 쪼들리다 못해 사기꾼으로 전락한 전직 은행원의 이야기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알거지 신세를 뛰어넘어 각계의 저명인사들을 농락하고, 우리 사회 기득권 인사들의 탐욕과 위선을 절묘하게 반죽해 가며 '벤처 사기꾼'이란 배역을 마음껏 즐긴다.





사기꾼의 반란을 통해 묻지 마 주식투자와 신용불량자의 실태를 알아보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실상을 진단한다


 



 


 



게릴라들의 출몰


 


“이 씹새! 너 오늘 시간 좀 내야겠어.”


낯선 사내의 갈라진 어투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휴대폰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의 임자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 보나마나 어떤 빚쟁이가 내세운 해결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시죠?”


도대체 어느 빚쟁이가 앞세운 해결사란 말인가.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협박 전화에 이골이 난 나로서도 살 떨리는 불안감을 어쩌지 못했다.


 


“당신 땜에 우리 형님이 힘들어하고 계셔!”


“대체 어느 분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갑자기 머리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개자식! 똥개만도 못한 씹새!”


“도대체 누군데 함부로 욕을 해요?”


나는 이미 떨고 있었다.


 


“도둑놈, 사기꾼, 파렴치한 지명 수배자에게 욕 좀 하면 안 되냐? 이 씹새! 오늘 당장 너를 없애 버릴겨!”


죽지 못해 사는 놈이오. 제발 죽여주소.”


 


“너, 말 잘 했다. 지금 당신 마누라 직장으로 쳐들어가 깽판을 칠까, 아니면 당신 새끼들을 납치할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 처갓집으로 몰려가 한바탕 지랄을 떨까?”


 


짜증과 환멸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후들거리는 가슴을 두 손으로 찍어 눌렀다. 권영수 과장의 찰거머리 같은 협박을 참아낼 수 없어 휴대폰 번호를 알려 줬다던 아내의 푸념이 떠오른 것도 그 순간이었다.


 


“혹시, 권영수 과장 건으로?”


“맞다, 이 씹새야!”


 


“지금 바로 권영수 과장에게 연락해 보죠.”


“연락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 중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오늘 나타나지 않으면…… 너 이 새끼, 밤 11시 전에 앉은뱅이가 돼 있을 거야. 알아들었어?”


 


“네, 알았습니다.”


“개자식, 알긴 뭘 알아? 지금 형님을 찾아뵙고 대책을 세워! 그렇지 못할 때 개죽음을 각오해!”


 


“어쨌든 만나 보죠.”


“이 씹새야, 만나는 게 능수가 아냐! 내 말은 오늘 결론을 내란 뜻이야.”


 


“알겠습니다.”


나는 특수 지령을 받는 마피아 조직원처럼 깍듯이 대답했다. 휴대폰 덮개를 얼른 닫았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처럼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아, 세상 형편이 허락한다면 당장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싶었다. 


 


* * *


 


한참을 머무적거리다가 권영수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대한은행 신촌 지점으로 찾아갔을 때도 능청을 떨긴 마찬가지였다.


 


“웬일이야? 날 찾아온 이유가.”


커피숍에 자리를 잡자마자 권영수 과장이 먼저 물었다.


 


“나 땜에 고통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 정말 미안해. 하지만 해결사를 동원한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


나는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연신 훔치다 말고 커피를 입 속에 털어 넣었다. 돈이 떨어져 점심도 구경하지 못한 빈속에 커피가 들어가자 뱃속이 쿨렁거리며 소용돌이쳤다.


 


“너만 괴로운 게 아냐! 나도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어!”


“너도 사채꾼에게 말려든 모양이구나?”


 


“헛소리 집어치워! 씨발 놈아, 지점장한테 불려가지 않도록 연체 대출금이나 빨리 갚으란 말야!”


권영수 과장도 나와 다르지 않게 빚쟁이들의 협공에 시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대한은행을 그만둔 처지라지만 권 과장의 처지는 달랐다. 그는 명예 퇴직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그럭저럭 버틸 만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보증을 선 네 대출금만 갚아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석우야, 제발 날 쌍놈으로 만들지 말란 말이다!”


권영수 과장이 견딜 수 없다는 듯 핏대를 올렸다.


 


“미안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어떡할래? 당장 갚을래? 아니면 그냥 드러누울래?”


 


“며칠만 기다려 봐.”


나는 지갑 안에 넣어 둔 복권 다섯 장을 의식하며 맥없이 대꾸했다. 내 간절한 소원대로 그 복권 중에서 한 장이 일등에 당첨되어 뜻밖의 횡재를 누리지 않는 한 빚을 갚을 길은 없었다.


 


“씨발 놈아!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권영수 과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 당장 해결하긴 어려워.”


“진짜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네.”


 


“그래, 오늘은 일단 헤어지자. 해결사를 동원하는 짓은 제발 하지 마. 곧 정리할 테니.”


나는 한숨 돌렸다는 생각으로 커피숍을 나섰다. 하지만 커피숍 출입문을 나서던 순간, 낯선 젊은이 한 명에게 덜미를 잡혔다. 또 다시 조폭 해결사들에게 납치되어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명치끝을 때렸다. 잠시 뒤, 두 명의 낯선 젊은이가 합세하여 나를 에워싸자 그 두려움은 현실로 이어졌다.


 


* * * 


 


“반항하면 더 힘들어져.”


왕방울 눈의 사내가 한 손으로 내 목젖을 거칠게 밀어젖히며 귀엣말로 속삭였다. 그럼에도 사건 담당 형사가 살인범을 체포할 때처럼 흥분된 목소리였다.


 


나는 비명을 낮게 내질렀고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질 것처럼 기우뚱거렸다. 치밀어 오른 고통의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아, 야속한 세상! 오늘 또 한 번 당해야 하는군……. 나는 체념과 절망을 짓씹었다.


 


“잔꾀 부리면 주리를 틀어 버릴겨.”


재빨리 다가선 뱁새눈의 사내가 내 팔목을 잡아챘다. 나는 거친 숨소리를 뱉었을 뿐 저항하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녀석들이 수고비를 받고 해결사로 나섰다면 저항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 형편에 비추어 봐도 공권력에 호소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기 혐의와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 중지 상태인 데다가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신용불량자 주제에 아무리 날고 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바로 네놈의 제삿날이여!”


“순순히 협조하지 않으면 경찰에 넘길 거야!”


 


해결사 두 명이 양쪽에서 내 팔을 뒤로 감아 틀어쥐었다. 어찌나 그들의 덩치가 우람하고 몸짓이 우악스러웠던지 밧줄로 묶인 것 이상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온몸이 아프게 죄여들면서 호흡이 가팔라졌다. 어느 새 내 목덜미와 이마에 땀이 배어 오는 걸 느꼈다.


 


“저기 좀 봐. 아까부터 우리 형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셔.”


승용차 열쇠를 흔들며 다가온 애송이 운전기사 녀석이 턱을 바짝 치켜들고 거들먹거렸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로변에 세워 둔 검은 승용차가 보였고 그 옆에 두목처럼 생긴 반소매 차림의 땅딸막한 녀석이 팔짱을 낀 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거역할 수 없이 그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땅딸보 앞으로 떠밀려 갔다.


 


“개죽음이 억울하다면 아는 사람을 찾아가 사정 좀 해 보는 게 어떨까?”


땅딸보 녀석이 승용차의 뒷문을 열어 주며 점잖게 나불거렸다. 구속영장을 갖고 들이닥친 수사관들에게 끌려가는 강도 혐의자처럼 나는 그랜저 승용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양복상의 안주머니에 있어야 할 내 휴대폰이 어느 틈엔가 애송이 운전기사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때? 아는 사람들 중에 당신을 살려 줄 천사 몇 명쯤 없어?”


앞자리에 앉아 있던 땅딸보 녀석이 돌아서더니 잭나이프의 날을 세웠다.


 


“어서 천사 좀 찾아 봐라. 그 몇 푼 안 되는 돈을 못 갚아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나는 두목처럼 보이는 그 녀석의 차가운 미소와 잭나이프의 섬뜩한 번쩍임에 놀라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렇게 밀리면서도 묘한 배짱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차라리 칼에 목을 찔려 죽어 버렸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어차피 도피의 세월을 고통스럽게 견디는 신세라면 어떤 식으로든 빨리 결론이 나는 게 좋을 것이었다.


 


“칼 좀 치워요. 고민하는 중이니까.”


잭나이프의 칼끝이 내 목젖에 닿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해결사들에게 몇 차례 당하면서 몰라보게 대범해져 있었다. 잠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한 명의 수호천사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아주 후미진 한강 하류로 차를 몰아 드릴까?”


땅딸보가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한강 하류라니요?”


내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네놈의 시체를 감쪽같이 처리하려면 그 곳처럼 안전한 땅은 없으니까.”


그 말에 내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땅딸보가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노트북 가방을 가로채자 오기가 발끈 솟았다.


 


권영수 과장에게 거짓 희망을 불어넣어 줄 속셈으로 노트북을 들고 나온 게 여간 후회되지 않았다. 휴대폰과 노트북을 되찾는 것은 물론 이들의 올가미를 벗어나려면 아무래도 잔머리를 굴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일산 신도시 쪽으로 갑시다.”


나는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은 것처럼 호기를 부렸다.


 


“일산에 천사라도 있는 모양이지?”


“예, 맞아요.”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랜저 승용차는 자유로를 거쳐 일산 신도시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마와 목덜미에 맺힌 땀이 차갑게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반짝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대한은행 일산 지점 근무 당시 몇 차례 거래했던 사채업자를 기억해 냈던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일단 그 사람의 사무실로 찾아가 사정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해결사들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묘안을 차근차근 생각해 볼 참이었다.


 


“주엽동 쪽으로 갑시다.”


“얄팍한 수작을 부리면 뼈도 못 추릴 거야!”


앞자리의 땅딸보가 다시 잭나이프의 날을 세웠다.


 


“잠깐 차를 세웁시다.”


“어딜 가게?”


 


“저 빌딩 앞에 세워 주세요.”


“누굴 만나려고?”


땅딸보가 잭나이프를 접으며 물었다.


 


“아주 가까운 고향 선배가 마침 공인 중개사 사무실을 열었거든요.”


“좋다! 다녀와라.”


 


그들은 나를 일단 믿어 보기로 했는지 내 윗도리를 벗긴 뒤 승용차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내가 부동산 중개 사무소 간판이 보이는 건물로 들어서자, 졸개 두 명이 보초를 서듯 상가 건물의 후문과 정문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달아날 수 없는 상황이 목을 조여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약속과 다르게 부동산 중개 사무소로 들어가지 않고 사채업자 사무실을 찾아갔다.


 


* * *


 


“사장님, 예전처럼 승용차를 담보로 잡히고 급전을 빌리고 싶습니다.”


3층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다급한 사정부터 말했다.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한참 횡설수설했고 눈물을 찔끔거리기까지 했다.


 


아, 나처럼 못난 놈이 또 있을까. 거동이 불편한 장모가 승용차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아내 명의로 되어 있는 승용차를 담보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그 승용차가 내 자식들의 통학용인 줄 알면서도, 수렁에 빠진 나를 잠시나마 건져 보려고 잔머리를 굴렸다.


 


“먼저 승용차를 가지고 오세요. 그 때 돈을 드리죠.”


예상과 다르지 않게 그 사채업자는 냉정했다. 대한은행 재직 시절 원만하고 부드럽게 유지되던 거래 관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장님, 밖에서 조폭들이 기다립니다.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나는 두 손을 사타구니 사이로 모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건 댁의 사정 아냐? 급하면 현물부터 양도해.”


사채업자가 갑자기 반말로 대꾸했다. 대한은행 퇴직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그 사채업자에게 더 매달려도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염치 불구하고 소파에 궁둥이를 걸쳤다.


 


“사장님, 우선 돈을 빌려 주시면 오늘 중으로 차를 끌고 오겠습니다.”


“지난번 대출금 상환 건도 얼마나 애를 먹였는지 잘 알잖아?”


사채업자는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고 고개를 외로 꼬았다.


 


“사장님, 하지만 그 때는…….”


“그 때보다 형편이 나아졌단 말인가? 제발 생떼 쓰지 마!”


 


“지금 조폭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다만 몇 푼이라도 먼저 빌려 주십시오.”


“여러 말 하지 말고 현물부터 양도해.”


 


“오늘 안으로 승용차를 끌고 올 테니까 몇 푼이라도 먼저 주세요.”


나는 그럴 경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곳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말장난으로 옥신각신하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한 시간 가량을 보냈다. 채권자와 해결사들의 시달림을 수없이 받아 온 터라서 조는 시간만큼은 고통을 까맣게 잊고 대박을 터뜨리는 꿈을 꿀 수 있었다.


 


“강 대리! 여긴 서울역 대합실이 아냐. 볼일 끝났으면 어서 돌아가!”


그 사채업자가 느닷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동안의 감질 나는 평화를 뒤로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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