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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함을 버려라
아린아린이 | 2020.01.17 | 조회 460 | 추천 1 댓글 0

뽐내고 오만한 마음은 모두가 객기(客氣)이니, 이 객기를 모두 물리친 후에야 정기(正氣)가 자랄 수 있으며, 정욕(情慾)은 모두 망령된 마음이니, 이 망령된 마음을 없애 버린 후에야 참된 마음이 나타날 것이다.

♣♣♣

뽐내고 오만한 마음은 일종의 취기(醉氣)와 같다. 자기 자신에게 취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분별력도 잃고 마침내 파멸을 자초할 수도 있다.

조선 순조(純祖)때 사람으로 영의정을 지낸 김재찬(金載瓚)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의 아버지인 김익(金翊) 역시 영의정이었다.

한번은 김재찬이 훈련대장 이창운의 종사관으로 발령이 난 일이 있었다. 으레 종사관으로 발령이 나면 상관인 훈련대장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러가는 것이 통례였으나 김재찬은 인사는커녕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김재찬으로서는 좋은 가문에 과거도 문과에 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훈련대장의 종사관인 무관 벼슬이 내려지자 과히 탐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과 문벌을 믿는지라 일개 훈련대장에게 인사를 안 가는 것쯤 그리 문제될 것 없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창운도 그리 녹녹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사에 원칙적인데다가 특히 부하들에게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인물인지라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창운은 며칠이 지나도록 새로 부임하게 될 종사관이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자 군관을 불러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 어서 가서 김재찬을 포박해 오라,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

갑자기 군졸들이 들이 닥치자 설마 자기를 어떻게 하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던 김재찬으로서도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급해진 나머지 김재찬은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아버지 김익이 영의정이니 이런 곤경쯤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 네가 오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국법마저 어겼으니 낸들 도리가 있겠느냐? 」
「 아버지! 자칫하면 소자는 이대로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
「 글쎄다, 내가 몇 자 편지는 써 줄 수도 있다마는 그걸로 훈련대장이 노여움을 풀지 모르겠구나. 」

아들이 하도 애원을 하자 김익은 편지 한 장을 주어 보냈다.
김재찬이 끌려오자 이창운은 즉시 형 집행을 서둘렀다.
다급해진 김재찬이 아버지가 써 준 서찰을 꺼내 올렸다.

「 무엇이냐? 」
「 아버님께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

이창운이 서신을 받아 펼치자 거기에는 아무 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백지 편지였다. 정승으로서 국법을 어긴 아들을 살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 체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 편지 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창운이 다시 김재찬을 하옥시키도록 명령하면서 말했다.

「 이번만은 특별히 네 아버님의 체면을 보아 목숨만은 살려 주는 바이니, 네 경거망동을 참회하면서 나를 따라 군사에 관한 일을 배우도록 하라. 」
「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

이날부터 이창운은 김재찬에게 매일 밤 당직을 명하고 나라의 지리와 국방에 대해서 가르쳤다. 뒷날 반드시 긴히 쓰일 일이 있을 것을 미리 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김재찬은 그 동안의 오만함을 버리고 열심히 배웠다.

뒷날 김재찬은 재상이 되었다. 그가 영의정으로 있을 때에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다. 김재찬은 평안도에 가본 일도 없었으나 전에 이창운에게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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