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당면을 넣지 않았다는 잡채
잡채는 요즘에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삶은 당면에 여러 채소와 버섯, 쇠고기를 볶아서 넣고 버무려서 달걀 지단과 실백 등을 고명으로 얹어 보기에도 좋고 맛도 뛰어나다.
잡채의 ‘잡(雜)’은 ‘섞다, 모으다, 많다’는 뜻이고, ‘채(菜)’는 채소를 뜻하니 여러 채소를 섞은 음식이란 뜻이다.
조선 시대 광해군 시절에 이충(李冲)이란 사람은 잡채를 뇌물로 올렸다고 한다. 궁에서 잔치를 열었을 때 잡채를 맛있게 만들어 바쳐서 왕의 환심을 사 그 공으로 호조판서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한노순(韓老純)은 산삼을 구해 바쳐서 우의정이 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를 풍자하여 “산삼각(山蔘閣) 노인을 서로 부러워하고, 잡채 상서(尙書)의 세력 당해 낼 사람 없다”고 노래하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음식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는 변함이 없다.
1670년의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잡채 만드는 법을 살펴보면, “오이, 무, 댓무, 참버섯, 석이, 표고, 송이, 녹두길음(숙주나물)은 생으로, 도라지, 거여목, 박고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승검초, 동아, 가지, 생치(꿩)는 삶아서 찢어 놓는다. 생강이 없으면 건강, 후추, 참기름, 진간장, 밀가루를 양념으로 쓴다. 각색 재료를 가늘게 한 치씩 썰어 각각 기름, 간장(진간장)에 볶아서 섞어 큰 대접에 담는다. 즙을 적당히 붓고 위에 천초, 후추, 생강을 뿌린다.
또 즙을 달리하려면 생치를 잘게 다지고 된장을 삼삼하게 해서 참기름으로 맛을 내되 밀가루즙을 타서 한소끔 끓여 걸쭉하게 만든다. 동아는 생으로 약간 간하고, 빛깔을 내려면 도라지와 맨드라미로 붉은 물을 들이고, 없으면 머루 물을 들이면 붉어진다”고 씌어있다. 이렇듯 지금의 잡채와는 전혀 달라서 여러 채소를 볶아서 밀가루즙을 끼얹어 걸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쓰지 않는 채소로 거여목(알파파), 승검초(당귀), 동아, 건강(말린 생강), 맨드라미 등이 나온다.
그 후에 나온 『음식보』에서는 “각색 나물을 곱게 썰어서 기름장에 볶아 꾸며 놓고 즙을 넣는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1600~1700년대의 잡채는 육류나 당면을 쓰지 않고 여러 나물을 재료로 쓰는 일종의 잡생숙채(雜生熟菜)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즙을 ‘치’라고 했는데 밀가루를 걸쭉하게 풀어서 끼얹은 것이다. 남쪽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두루치기’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여러 가지를 볶아서 밀가루즙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음식으로 예전의 잡채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규곤요람』(1860년)에 나오는 잡채는 “숙주나물을 거두절미하고, 미나리는 숙주 길이로 썰고, 곤자소니와 양은 삶아서 썰어 재워서 살짝 볶고, 파는 잔 것으로 골라서 살짜 데쳐 썰어 갖은 고명에 주무른다. 밀가루를 조금 넣고 냄비에 볶아, 달걀 노른자와 흰자를 부쳐서 채썬 것과 잣가루를 뿌리고 겨자에 무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도 당면을 사용하지 않았다.
잡채에 당면이 들어간 것은 1900년대가 훨씬 지나『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39년)에서이다. “도라지, 미나리, 목이, 황화채(원추리꽃), 표고, 파, 음파 등을 볶아서 섞고, 위에 알고명과 잣, 채썬 고추 등을 얹는다. 마른 해삼과 전복을 삶아서 채썰어 넣으면 좋고, 당면을 데쳐서 넣는 것은 좋지 못하며 먹을 때 겨자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는다”고 하여 당면이 언급되었지만 좋은 방법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조선요리제법』(1942년)의 잡채는 재료는 위와 거의 비슷하지만 재료 중에 당면을 제일 먼저 꼽았다. 당면은 녹두나 감자의 녹말을 반죽하여 국수로 뽑아 천연동결법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19년 사리원에 처음 공장이 생겼으며, 우리가 지금 먹는 당면 넣은 잡채는 1930년 이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흔히 잡채를 전통 음식으로 알고 있으나 그 내용이 이처럼 많이 바뀌었다. 당면은 먹기 시작한 지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식품이다.
조리법
잡채는 요즘에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이름 그대로 여러 채소를 섞은 음식인데, 당면을 넣어 만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잡채
재료(4인분)
쇠고기(우둔) 120g, 마른 표고(중) 3개, 목이 10g, 도라지 100g, 당근 100g, 양파 ½개(100g), 오이(중) ½개, 달걀 1개, 당면 30g, 소금·후춧가루·깨소금 각 적량
(가) 간장(진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4작은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나)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다) 간장(진간장) 1큰술, 설탕 1큰술, 참기름 1큰술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쇠고기는 살로 결을 따라서 길이로 가늘게 채썬다.
2. 표고는 물에 불려서 기둥을 떼어내고 가늘게 채썰고, 목이는 불려서 한 잎씩 떼어 작게 썬다.
3. (가)의 양념장을 만들어 쇠고기, 표고, 목이에 나누어 고루 무쳐서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서 식힌다.
4. 오이, 당근은 4cm 크기로 납작하게 채썰어서 소금에 절였다가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5. 도라지는 가늘게 잘라서 소금을 넣고 주물러 씻어서 (나)의 양념으로 무쳐서 볶고, 양파는 길이대로 채썰어 기름에 볶아서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6. 달걀은 황백으로 나누어 지단을 부쳐서 채썬다.
7. 당면은 끓는 물에 부드럽게 삶아 내어 길이를 두세 번 끊어서 (다)의 조미료로 고루 무친다.
8. 큰 그릇에 지단을 조금만 남기고 볶은 재료와 당면을 한데 넣고 고루 섞어서 그릇에 담고 위에 달걀 지단을 얹는다.
초간장으로 무치는 죽순채
봄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 대밭에 나가 보면 보이지 않던 순이 여기저기 솟아 나온 것을 볼 수 있는데,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순(筍)은 열흘 간격을 뜻하는 ‘순(旬)’에서 나온 말로 솟아 나온 지 열흘 된 죽순을 먹을 수 있어 붙여졌다 한다.
죽순은 땅속에 있는 대나무 줄기에서 솟아난 순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 왔다. 여러 겹의 비늘 모양의 껍질에 싸여 있는데 아주 빨리 자라서 스리랑카에서는 하루에 75cm나 자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아시아의 열대 지방인 인도와 말레이시아가 원산지이며 북쪽으로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온이 높은 영호남 지방에서만 노지에서 나며 왕죽, 분죽(솜대), 맹종죽, 갓대, 조리대, 이대, 검정대(烏竹(오죽)) 등이 자란다.
제철이 아닐 때는 통조림을 쓰는데, 우리나라 것이 제일 연하고 맛있다. 태국이나 대만산은 노랗고 딱딱하며 이상한 냄새가 나서 우리 음식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죽순에는 크게 맹종족, 분죽, 왕죽의 죽순이 있는데 저마다 생김새며 나오는 시기나 맛이 다르다. 4월 중순부터 한 달쯤 나오는 맹종죽의 죽순은 일본 사람들이 들여온 것으로 위가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은 고깔 모양을 하고 있다. 겉껍질이 짙은 밤색이고 마디 간격이 짧다. 세 가지 중에서 가장 크지만 맛은 가장 덜하고 아린 맛이 많아서 반드시 삶아서 물에 담갔다가 써야 한다. 흔히 통조림 죽순을 만드는 데 쓴다. 맹종은 중국 사람인데 죽순으로 노부모의 병을 낫게 했다 하여 맹종죽이라 불렀다고 한다. 민가에서는 홍역으로 앓는 아이에게 죽순 생즙을 까서 먹이면 나았다고 한다.
한편 5월 초순부터 한 달쯤 나오는 분죽의 죽순은 가장 맛이 좋은 재래 죽순이다. 맹종죽에 비해 고깔 모양이 갸름하고 겉껍질이 노르스름한 밤색을 띠며 마디 간격이 길다.
유월 한 달 동안에 나오는 왕죽의 죽순도 재래종이며 참대라고도 하며 위가 뾰족하지 않고 위아래의 지름이 거의 차이가 없이 길쭉하다. 겉껍질은 노르스름한 바탕에 검은빛이 살짝 비치며 마디 간격도 길다. 분죽과 마찬가지로 아린 맛이 별로 없어 삶은 뒤에 굳이 물에 담그지 않아도 괜찮다.
죽순은 클수록 질기므로 맹종죽은 키가 20cm, 왕죽은 35cm가 넘지 않아야 연하다. 또 겉껍질이 노르스름할수록, 만져 보아 말랑말랑할수록 연하고 부드럽다.
죽순의 감칠맛 성분은 아스파라긴, 티로신, 클루타민 등의 아미노산 복합체이다. 이 성분들은 햇볕이나 공기에 노출되면 수신, 호모겐티딘산으로 변해 맛이 없어지므로 채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하고 잡맛이 없는 것을 상품으로 친다. 향기와 맛을 그대로 보존하려면 되도록 빨리 삶아서 냉장 보관하여 쓰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저장하기도 하였다.
죽순을 삶으려면 우선 껍질 있는 원뿔형 죽순의 위 삼분의 일 정도 부분을 사선으로 도려내고 살이 닿지 않도록 세로로 칼집을 넣는다. 큰 솥이나 냄비에 죽순을 담고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부어 쌀겨 한두 컵과 마른 고추 두세 개를 넣어 끓인다. 죽순의 크기나 분량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한두 시간 정도 끓여서 불을 끄고 그대로 두어 식힌다. 완전히 식은 후에 건져서 칼집을 조심스럽게 벌리면서 껍질을 벗겨 내면 안에 하얀 살이 나온다. 이것을 찬물에 30분 이상 담가 두었다가 쓴다. 안에 있는 죽순 살은 껍질을 벗기기 전의 삼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쌀겨를 구하기가 어려우면 쌀뜨물을 넣거나 밀가루를 서너 숟가락 넣어서 삶으면 된다. 껍질 중 가장 안쪽은 옥수수의 속껍질처럼 색이 연한데 썰어서 나물을 만들면 별미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묵은 죽순일 때에는 박하를 조금 넣어 삶으면 억세지 않으며, 고기와 같이 삶으면 박하를 넣지 않아도 억세지 않다. 연한 죽순이라도 박하와 소금을 조금씩 넣거나 잿물에 삶아도 괜찮다”고 하여 삶을 때 박하 넣기를 권하고 있다.
죽순에는 단백질이 2.5%나 들어 있고, 비타민 B군과 비타민 C,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 있다. 한방에서는 소갈증을 다스리고 이뇨 작용을 도우며 거담, 불면증, 주독을 풀어 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죽순채는 죽순을 얇게 썰어 기름에 살짝 볶아서 데친 숙주와 미나리, 볶은 쇠고기를 한데 넣어 새콤한 초간장으로 무친 음식인데 산뜻하여 봄철에 입맛을 돋워 준다. 죽순찜은 반으로 가른 죽순의 등에 칼집을 넣어서 다진 쇠고기를 채워 넣고 슴슴한 장국에 끓인다. 죽순회는 삶은 죽순을 얇게 썰어서 초장이나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얇게 썰어 국, 전골, 찌개 등 국물 음식에 넣어도 국물이 맑고 시원하다.
조리법
죽순채
죽순에는 비타민 B군과 C, 식이섬유가 많다. 한방에서는 이뇨, 거담제나 주독을 풀어 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죽순채(가운데), 죽순찜(위), 죽순회(아래)
재료(4인분)
날죽순(중) 2개(600g), 물 10컵, 마른 고추 2개, 쇠고기(우둔) 120g, 마른 표고 3개, 미나리 50g, 숙주나물 100g, 다홍고추 1개, 달걀 1개
(가) 간장(진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4작은술, 다진 마늘 2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나) 간장(진간장) 2작은술, 소금 2작은술, 설탕 2작은술, 식초 1큰술, 깨소금 2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날죽순은 뾰족한 쪽의 끝을 5cm 정도 어슷하게 자르고 길이로 칼집을 한 군데 넣는다.
냄비에 물을 붓고 마른 고추를 한데 넣어 1시간 정도 삶아서 그대로 식힌다.
2. 삶은 죽순은 껍질을 벗겨 반을 갈라서 빗살 모양으로 납작하게 썬다.
3. 쇠고기는 살로 채썰고, 표고는 물에 불려서 기둥을 떼어 내고 채썬다.
두 가지를 합하여 (가)의 양념장으로 무쳐서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서 식힌다.
4. 미나리는 잎을 떼어 다듬어 4cm 길이로 자르고, 숙주는 머리와 꼬리를 다듬어서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친다.
5. 달걀은 황백으로 나누어 지단을 부쳐서 채썰어 조금 남기고 볶은 죽순과 볶은 쇠고기와 표고, 미나리, 숙주, 고추 채를 한데 모아서 (나)의 양념을 넣고 고루 무치고 지단을 고명으로 얹는다.
죽순찜
반으로 가른 죽순 등에 칼집을 넣어 다진 쇠고기를 채워 넣고 장국에 끓인 것이다.
재료(4인분)
날죽순(중) 2개, 쇠고기 100g, 마른 표고 2개
(가)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 ½작은술, 소금 ½작은술, 다진 파 2작은술, 마늘 1작은술, 깨소금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나) 육수 2컵,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 1작은술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죽순은 껍질째 물에 푹 삶아서 식힌 후에 껍질을 벗겨 반으로 가른다.
2. 쇠고기는 곱게 다지고, 표고는 물에 불려서 기둥을 떼고 가늘게 채썬다.
3. (가)의 양념을 합하여 양념장을 만들어 쇠고기와 표고를 합하여 고루 무친다.
4. 삶은 죽순의 빗살 무늬 사이에 양념한 고기와 표고를 채워 넣는다.
5. 냄비에 육수를 담고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으로 간을 하여 소를 채운 죽순을 나란히 담고 끓인다.
6. 죽순에 간이 배고 부드럽게 익으면 그릇에 담고 계란 지단, 실파, 실고추 등 고명을 얹는다.
죽순회
햇죽순의 상큼한 향기와 아삭하게 씹히는 감촉이 아주 좋다.
재료(4인분)
날죽순(중) 1개
(가) 고추장 2큰술, 간장(진간장) ½큰술, 식초 1큰술, 물 1큰술, 설탕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통깨 1작은술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죽순은 물을 넉넉히 붓고 푹 삶아서 그대로 식힌다.
2. 삶은 죽순이 식으면 껍질을 벗기고, 속살만을 꺼내어 반으로 가른 다음에 빗살무늬가 나도록 얇게 저며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3. (가)의 양념을 모두 합하여 고루 섞어서 고추장을 만들어 작은 그릇에 담아 함께 낸다.
매콤한 겨자채
매운 음식은 식욕을 돋워 주고 먹은 뒤에도 개운하다. 우리 음식에 매운맛이 나게 해주는 양념으로는 고추, 후추, 산초, 겨자, 고추장 등이 있다. 서양 음식에는 후추, 겨자, 고추냉이(horseradish)가 있고 일본에는 산초와 와사비라 불리는 고추냉이가 있다.
우리 음식은 대부분 고추로 매운맛을 내어 음식의 색깔이 붉은 것이 많다. 겨자는 노란색을 내면서 특이하게 톡 쏘는 매운맛을 낸다. 겨자는 갓의 씨를 가루 낸 것으로 가을 갓은 잎으로 김치를 담그지만 봄 갓은 씨를 받아 겨자로 쓴다. 재래종은 겨잣가루가 검은 녹색으로 쑥색 비슷하지만 서양 겨자는 노란색이 많은 연두색이다. 겨자는 수분이 없는 가루일 때는 매운맛이 없지만 물과 섞여서 공기에 닿으면 비로소 매운맛을 낸다. 예전에는 사기 사발에 겨잣가루를 되직하게 개어서 한지로 덮어 부뚜막이나 아궁이 가까이 20~30분쯤 두어 매운 기가 나면 수저로 잘 저어서 매운맛을 충분히 돋워 사용했다.
겨자의 매운맛 성분은 시니그린이라는 효소로 50~60˚C 이상이 되면 불활성화되어 전혀 매운맛이 나지 않는다. 따라서 물을 넣을 때 미지근한 물을 섞어야 한다. 급한 마음에 끓는 물을 넣으면 익어 버려 쓴맛만 나고 매운맛은 안 난다. 요즘은 수입 겨자도 들어오고 종자가 재래종과 달라서 물에 개어 바로 매운맛이 나는 것도 있고, 아예 연(練)겨자라 하여 치약처럼 튜브 안에 들어 있는 것도 있다. 겨잣가루는 공기에 노출되면 매운맛 성분이 달아나 버리므로 쓰고 남은 것은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꼭 묶어 두어야 다시 쓸 수 있다.
겨자채는 날채소와 익힌 고기, 해물을 합하여 겨자즙으로 무친 생채를 말한다. 고기 음식을 먹을 때 곁들이면 느끼한 맛을 없애 주며, 주안상이나 교자상에 올리면 좋다. 겨자채에는 양지머리를 통째로 삶아 누른 편육이 들어가야 하고, 채소는 신선하고 씹는 맛이 있는 오이, 당근, 양배추, 죽순을 많이 쓰고 배와 생률, 잣도 쓴다. 요즘에는 중국 음식의 영향으로 해파리와 오이채에, 다진 마늘을 넣은 소스로 버무리는 방법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나 우리 고유의 맛은 아니다. 겨자채는 재료도 좋아야 하지만 겨자즙의 간을 잘 맞추고 넣는 양이 적당해야 맛있다.
겨자즙은 일단 매운맛을 낸 겨자 갠 것에 설탕, 식초,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소스처럼 걸쭉하게 만든다. 겨자의 톡 쏘는 매운맛을 순하게 하려면 연유나 생크림을 넣으면 된다. 예전에는 색색이 신선한 채소와 편육 지단을 함께 무쳐서 담고 고명을 얹었지만 한데 뒤섞여서 볼품이 없으므로 큰 그릇에 색을 맞추어 돌려 담고 겨자즙을 작은 그릇에 따로 담아내는 것이 깔끔하다. 오징어, 문어, 새우, 소라 등의 해물이 많이 들어간 것은 해물겨자채라고 한다. 겨자채에 넣을 재료는 겨자즙이 고루 묻을 수 있도록 작게 써는데 너무 가늘게 채썰지 말고 납작납작하게 썬다.
겨자채
겨자는 갓의 씨를 빻아 만든다. 가을 갓의 잎은 김치를 담그고 봄 갓은 씨를 받아 겨자로 쓴다. 채소, 고기, 해물을 합하여 겨자즙으로 무친 겨자채는 매콤하면서도 맛있다.
겨자채
채소 찬물에 담그기
재료(4인분)
오이(소) ½개(50g), 배 ¼개, 당근 50g, 양배추 50g, 삶은 죽순 50g, 밤 3개, 잣 1작은술, 달걀 1개, 전복 1개, 양지머리편육 50g, 후춧가루·소금 적량
(가) 겨잣가루 2큰술, 물 1½큰술, 설탕 1작은술, 식초 2큰술, 소금 1작은술, 연유 3큰술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오이, 당근, 양배추는 씻어서 폭 1cm, 길이 4∼5cm로 썬다. 죽순도 같은 크기로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2. 양지머리는 삶아 눌러 편육으로 하여 채소와 같은 크기로 썬다. 전복은 소금으로 문질러 씻어서 끓는 물에 살짝 삶아서 얇게 저민다.
3. 배는 껍질을 벗겨 채소와 같은 크기로 썰고, 잣은 고깔을 따고, 밤은 속껍질까지 깨끗이 벗겨 납작하게 썰어서 찬물에 30분쯤 담갔다가 건진다.
4. 달걀은 황백으로 나누어 약간 도톰하게 지단을 부쳐서 채소와 같은 크기로 썬다.
5. (가)의 조미료 중 먼저 겨잣가루에 물을 넣어 되직하게 개어서 잠시 덮어 두어 매운맛을 낸 후에 식초, 설탕, 소금을 넣어 겨자즙을 만든다.
6. 준비한 재료들을 차게 두었다가 상에 내기 직전에 소금, 후춧가루를 약간 뿌리고 겨자즙과 연유를 넣어 가볍게 고루 무친 후 그릇에 담고 실백을 얹는다.
* 겨잣가루는 미지근한 온수에 넣어 고루 저어서 두면 매운맛이 생기는데 이 때 물 온도가 60℃가 넘으면 매운맛을 내는 효소가 죽어서 매운맛은 없고 쓴맛만 남는다. 연유를 넣으면 매운맛이 부드럽게 된다.